중구 신당동 남산타운 106㎡ 리모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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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으로 들어오는 思惟
[窓의 二重性]
창은 안에 갇혀진 이야기 부스러기를 내보내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이는 통로이며, 햇빛과 바람과 계절이 전해오는 소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우편함과도 같습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바깥세상은 나를 감추고 다른 것을 본다는 은밀한 쾌감마저 있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이므로 그 관계는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빛과 바람과 소리와 풍경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집은 햇빛이 잘 들며 끊이지 않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들락거리는 투명한 창이 있고 그 창가에는 아담한 탁자가 놓여있습니다. 달빛이 창으로 쏟아질 때나 바람이 창을 흔들어도 시인은 세상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문학이 되어 다시 창을 통해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러나 집 밖에서 보는 창은 나를 노출하고 안을 볼 수가 없으니 단절입니다. 은밀하게 안을 보려고 하면 관음증이며 창을 열려고 하면 범죄입니다.
이렇듯, 안에서 보는 창과 바깥에서 보는 창의 二重性을 건축에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窓의 사전적 의미는 “실내의 환기 및 채광을 위하여 벽체에 개구부를 내고 개폐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네이버 지식백과), “벽에 짜여져 있고, 빛과 공기를 들여보내기 위해 유리가 끼워져 있는 부분.”(브리태니커)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窓의 정의를 말한 것이라지만 둘 다 ‘밖을 볼 수 있다’라는 기능적 역할이 없거나 다소 미흡해 보입니다.
환기와 채광을 위해서라면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창과 무관하게 할 수도 있는데 모든 창이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진 것을 보면 창을 통해 밖을 본다는 것이 사전적 의미보다 더 중요한 의미로 해석 됩니다.
현대건축에서 창은 더 클수록, 창밖의 비주얼이 더 좋고 더 멀리 보일수록 프리미엄이 있습니다. 더욱이 고층건물은 제2롯데월드처럼 밖을 볼 수 있는 유리벽은 있지만 열 수 있는 창은 아예 없습니다.
고속으로 달리는 버스나, 열차, 비행기 등에도 소리를 차단하고 밖을 볼 수는 있지만 열 수 있는 창은 없습니다. 이러한 창의 진화는 실내 환기를 위한 것이라거나, 개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창의 의미보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scenery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우월하니 이제는 사전적 의미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로미오가 줄리엣의 창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르고 그 창을 통해 익어가는 아름다운 사랑이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되는 한 건축에서의 窓은 세상과 소통하는 문학적 가치로 해석해야 합니다.
[중구 신당동 남산타운]
모든 고뇌가 사라질 듯 한 목소리의 멋진 남편분과 쾌활하고 아름다운 borisis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듯 친근하게 대해 주심에 왠지 뭐라도 더 잘 해드리고 싶었던 남산타운은 마지막까지 이해와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소파에 앉으면 반쯤 보이는 남산 방향이 아니라 반대로 배치 되어있어 서로 공감하듯 전열과 통신 등의 설비를 이설하는 등 소파에 앉아 남산을 눈에 넣고야 말겠다는 의지도 현실화 되었습니다.
남산타운에서 창으로 들어오는 남산의 풍경에 窓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함께 해 주심에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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