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은 우리의 지각과 인식이 작동하는 방식에 의해 나타난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이 건축에서 너무나 적절한 말이 아닌가 싶다. 평생 반복적으로 학습된 기억으로 사물을 지각하고 인지하는 것이 보편타당한 것이며 대중과 공감 가능한 것인지, 또 누구나 그 사물을 동일선상에서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며 집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그 의미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하는 연상게임이 있다. 눈을 감고 어떤 물건을 만지게 하고 촉감에 의해서만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맞히는 게임이다. 게임을 하는 당사자가 그 물건의 촉감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본적이 없다면 촉수는 지금까지의 경험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엉뚱한 이미지를 연상하며 답을 하게 되며 그 엉뚱함에 시청자는 폭소한다. 사람들의 경험적 데이터는 살아온 환경, 가정, 교육, 유전적 성격, 인적 네트워크, 사회적 위치 등에 각기 다르게 저장되므로 상상하는 것 또한 자신의 경험적 데이터에서부터 기반한다고 할 것이다.

데이터 리터러시(Data Literacy)는 데이터를 읽고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이 시대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량의 수십, 수백 배를 초과하는 데이터가 넘쳐나는 실정이다. 이것 또한 쇼펜하우어 말과 연결하면 넘쳐나는 데이터에서 개인의 취사선택은 과연 보편타당한 것이며, 동시대의 사람과 충분한 교감이 될 것인지의 질문이 될 것이다. 홍수 같은 데이터가 모든 기업이나 개인에게 적합한 데이터일 수 없으며 잘못 선택한 데이터는 심각한 오류를 낳을 것이며 오롯이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관찰하는 것은 건축가에게 늘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항상 대중적 교감과 정의로운 선택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능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눈과 생존력을 높이려는 데이터의 취사선택 사이에서 늘 외로운 싸움을 한다. 아무리 선한 마음으로 결과를 내놓아도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롯이 건축주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집을 다루는 사람의 손은 늘 따뜻하고 예뻐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