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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상의 생각하는 건축 | 집이 건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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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상의 생각하는 건축 | 집이 건축입니까? 2019-05-0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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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이 건축입니까? ]​

영화 귀향에서

 

몇 개월 전 지인의 초대로 귀향시사회를 다녀왔습니다.

엄마 품에서 아직은 어리광을 부릴 20만 명의 10대 어린 소녀들이 영문도 모른 체 일본군에게 이끌려 그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었던 부끄럽고 치욕스런 우리 역사의 단면을 분노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변태적 실상에 가슴이 저며 옵니다. 민주주의 안에 자본주의의 질서가 있어야 함에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종속되어 일본에 의한 부끄럽고 치욕의 역사를 경제적 목적에 의해 공식적으로 용인하고 말았습니다. 뭐 거창한 국민의 행복추구권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그분들의 자존심은 지켜줘야 했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린 소녀들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은 감옥보다 더 참혹한 생활이었고 그분들의 역할은 일본군의 잔인한 성폭력 대상이었습니다. 어쩌면 죽는 것이 낳을 지옥 같은 환경에서 그분들이 끝까지 살아 남아야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토록 모진 삶을 이겨낸 강인한 정신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오늘 이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귀향(鬼鄕), 죽임을 당한 분들이 혼령으로라도 돌아와야했던 그곳,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 가고자 했던 그곳은 아버지와 흥겹게 아리랑을 불렀던 아지랑이 논두렁, 언제나 따듯했던 엄마의 품, 동무들과 철없이 장난치던 푸른 뒷동산, 깊은 밤 도란도란 들려오던 아버지 어머니의 대화소리 있던 그곳, 행복 가득한 집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집을 단순히 건축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해 지는 부분입니다. 그분들에게 있어서 집은 물리적인 건축이 아니라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었고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었고 가족의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은 내 살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집은 생명이 잉태되고 역사가 되고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집은 문학입니다.

 

설 연휴 때 처가를 다녀왔는데 이번 설은 좀 서글픈 명절이었습니다. 젊은 날 사고로 하반신을 못 쓰게 되어 누워만 계시는 장인어른, 그런 장인을 20년 넘게 정성스레 모시다가 홀로되신지 25, 이번 추위에 91세 장모님이 낙상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겁니다. 효자효녀 자녀들의 근심걱정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치료를 받는 내내 장모님이 입에 달고 말씀하신 것은 집에 가자!”였습니다. 장모님의 집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요?

시골 처갓집은 집이 두 채 있습니다. 오래되어 쓰러져가는 흙집을 두고 볼 수가 없어 바로 위쪽에 따로 한 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장모님은 낮에는 새집에 계시다가도 어두워지면 쓰러져가는 옛날 집으로 가십니다. 그날도 못가시게 만류하던 처형 몰래 내려가시다 낙상을 당한 것입니다. 도대체 장모님은 그토록 쓰러져 가는 그 흙집에 무슨 미련이 있을까요?

양반집 딸로 태어나 어린나이에 시집살이하며 남몰래 눈시울 적셨던 부엌, 25년 전 먼저가신 장인에 대한 연민, 품안에서 6남매를 키워낸 새의 둥지와도 같은 보금자리, 깊은 밤 장인과 도란도란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아직 남아있을 것 같은 그곳, 쓰러져 가는 그 흙집에는 그런 추억과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영화 귀향에서 어린소녀가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집, 병원에 계신 장모님이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 집, 군에 간 아들이 제일 먼저 달려오는 집, 무의식 취중에도 반드시 찾아가는 집, 집은 영혼과 육신의 안식처이며 아무리 꺼내도 수많은 이야기가 넘쳐나는 문학입니다.

 

-노현상의 생각하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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